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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빠지는 세상에서 폭발적인 창작하기, <아이메이디스토리유>

by xcxogee 2022. 1. 24.



* <아이메이디스트로이유> 웨이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이메이디스토리유>는 12부작 HBO 시리즈다. 포스팅에서 모두 이야기할 수도 없고 그럴 포부도 없다. 그냥 늘 강조하듯 사적인 감상과 일기가 될 뿐이다. <아이메이디스토리유>를 <아메유>라고 하겠음!

* <아메유>에서 비아조
<아메유>에서 제일 먼저 이야기하겠다는 게 비아조라니... 나도 참... 하여간에 <아메유>에서 비아조라는 인물은 눈에 확 띄었다. 비아조의 등장이 '왕자님'스러웠기 때문이다. 비아조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아라벨라와 작별하며 짐을 차에 실어준다. 그래서 우리는 여자친구, 남자친구냐는 아라벨라의 질문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다만 헤어지자마자 전화를 걸어 '바다를 잊지 말아.'라고 할 뿐. 내가 상상하고 규정하는 현실 속 '왕자님'은 딱 이 정도다. 특별하고 로맨틱한 제스처가 있고, 나에 대한 케어를 자처하는 사람. 그런 비아조가 돌변할 때 당황하지는 않았다. 비아조의 '왕자님'스러움에 끌릴 때 즉각적으로 그렸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아라벨라는 강간을 당한다. 누군가 아라벨라의 술에 약을 탔기 때문에 기억도 확실하지 않다. 아라벨라 몸에서 채취한 정액의 양도 적어 확실한 DNA 데이터도 남기지 못했다. 유력한 용의자와 대조시켜볼 수 있을 뿐. 그러기 위해 그 정액이 그동안 관계를 가졌던 비아조의 것이 아님이 먼저 확인되어야 했다. 비아조는 영국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려면 이탈리아 경찰서에 정액 샘플을 제출해야 했다. 이 일로 비아조는 아라벨라에게 길길이 화를 내기 시작한다. 네가 조심했어야지, 너는 생각이 없다, 너는 너를 지키지 못했다. 비아조는 완벽히 '왕자님'을 탈피한다.

* 콰미와 아라벨라의 섹스
콰미는 아라벨라의 친구로 게이다. 콰미는 극에 등장하는 내내 그라인더 사용을 멈추지 않는다. 그만큼 새로운 사람과 자주 만나고 섹스를 한다. 아라벨라는 콰미만큼 상대를 찾는데 시간을 들이진 않지만, 둘의 태도는 분명히 비슷한 점이 있다. 아라벨라는 비아조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자인에게도 고마우니 섹스를 하자고 한다. 아라벨라가 그들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도와줘서,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운 마음이 섹스에 대한 의무로 조금이나마 이어졌다는 건 분명하다. 성합의에 있어서 약자인 동시에 보통의 경우 결정권자인 여성은 제공의 의무감을 느낀다. 콰미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갖지만, 지속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섹스를 위해 찾는 그라인더 속에서 콰미는 자신도 섹스를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지한 릴레이션십을 찾는 사람은 너무 절박해 보이니까. 둘에게 섹스는 도구다. 내가 정서적 교류를 원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또 자신이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고 속이기 위해.

* 가난함, 흑인, 여성. 이상하게도 나의 정체성은 가장 강력한 것으로 대체된다.
아라벨라가 이탈리아에 갔을 때 묵은 고급형 숙소와 생활비는 모두 선지급된 고료였다. 아라벨라와 같이 떠난 친구 테리는 아라벨라에게 요즘은 B card(흑인 카드)가 참 강하다고 한다. 아라벨라가 쓴 책이 흑인 여성 작가로서의 논픽션이었기 때문이다. “There are hungry children. There’s a war in Syria. Not everyone has a cell phone.” 아라벨라는 종종 이 말을 되뇌인다. 자신의 비극을 축소하기 위해서, 유난을 떨지 않기 위해서. 아라벨라는 이런 말로 자신을 진정시키다가도, 공개적인 북토크 자리에서 자인을 성폭력범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자인은 아라벨라의 동료 작가이며 연인 사이에 가깝다. 그는 아라벨라와 처음 섹스를 했을 때, 아라벨라의 동의 없이 콘돔을 제거하고 사정을 한다. 섹스가 끝나고 자인이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아라벨라는 크게 놀라 화를 낸다. 자인과 아라벨라는 사후피임약을 산 후 사건을 일단락한다. 둘은 감정적 교류를 지속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아라벨라의 지목은 정치적이었다. 자인이 행사장에서 도망치는 사진이 트위터를 도배했고, 아라벨라는 성폭력 피해자의 영웅이 되었다. 그 후 성폭력을 대항하는 인플루언서의 삶은 잠시나마 아라벨라에게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다.

* 테리와 콰미
아라벨라를 보자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서 1정체성, 2정체성, 3정체성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지? 그건 의미가 있는가? 아라벨라는 흑인여성으로서, 강간피해자로서 활동을 하고 책을 낸다. 정체성과 수입이 직결된 상황에서 아라벨라는 정체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정체성이 절대 달가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 정체성으로 친구가 생기기도 한다. 드라마 내내 아라벨라의 친구는 모두 거의 흑인이다. 유일한 백인 친구가 벤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벤은 사회와 단절된 인물이기 때문에). 테리와 콰미, 벤까지 친구는 아라벨라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한다. 내가 여성이란 걸, 흑인이란 걸 잠시라도 잊을 수 없는 세상에서 더없이 소중한 존재들. 결말에서 아라벨라가 데이빗(강간 가해자)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테리가 크다고 생각한다. 테리는 분명 아라벨라를 도울 것이고, 아라벨라가 데이빗을 죽이는 순간 테리를 잃을 수 있으니까.

* 폭발적인 글쓰기
괴로움이 창작에서 어떤 힘이 되는지, 괴로운 사람은 창작에서 어떤 힘을 얻는지가 궁금했다. 그런 마음에서 <드라이브마이카>라는 영화도 봤고, <아메유>도 봤다.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도움이 된 건 <아메유>다. <아메유>의 엔딩이 마음에 들었던 건 아라벨라가 작가인만큼 소설적 과정이라서였다. 지금껏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분류하고 그에 맞는 미래를 그리고 선택하는 일. 엔딩에서는 아라벨라가 데이빗(성폭력 가해자)과 대면하는 모습을 그린다. 아라벨라는 데이빗을 발견 후 접근하는 두 가지 상황을 상상한다. 데이빗이 또다시 자신에게 약을 타도록 유도한 후, 역으로 그 약을 데이빗에게 투여한다. 그런 후 길거리에서 비틀대다 쓰러지는 데이빗의 성기를 꺼내 부여잡다 얼굴을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의식을 잃은 채 주먹을 얻어맞은 데이빗은 피범벅이 되고 방치되어 죽는다. 두 번째 상황에서는 역시 데이빗이 자신에게 약을 타도록 유도한 후, 데이빗이 자신을 강간하려는 순간 놀라게 한다. 데이빗은 이 정도는 폭력도 아니고, 세상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아이들이 죽고 있으니 입을 닥치라고 소리친다. 아라벨라는 그런 데이빗을 자신의 집에 데려간다. 데이빗은 아무도 자신을 침대에 앉게 해주지 않았고, 자신의 강간은 그런 정서적 소외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한다. 아라벨라는 위축되고 트라우마 투성이인 데이빗을 마주하고, 데이빗과 섹스한다. 이 두 가지 상황 중 어느 것이 맞고, 아라벨라가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아라벨라는 데이빗을 전소시키고, 테리와 벤을 발견하고 있으니까. 침대 밑에 있던 옷과 초음파 사진과 삶의 조각들을 숨기지 않고 꺼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결국 아라벨라는 침대 밑에서 트라우마를 꺼내면서 종료시키고 있다.